신앙의 신비여
사제 생활 50년의 단상
왕영수 신부 지음
1. 스스로 깊어지는 힘, 회개
07 나는 사랑에 빚진 자
나는 지난 2006년 1월 1일 퇴임했습니다. 44년간
교회가 내게 부여한 사제의 직무를 마치고 이곳 '새 에루살렘 공동체'
에 살면서 또 다른 사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2년간 일하고, 기
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과 그동안 꿈꾸어오던 공동체를 일구는 새
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나름대로
의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생활한 지 6개월쯤 지났을 때 일입니다. 나는 뜻
밖의 일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내가 잘 대해주었다고 생각
하는 사람, 호의를 많이 베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부터 비난과
험담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내게 모진 말을 하고 상소
리까지 했습니다. 마음이 아팠고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하느님께
받은 많은 사랑과 축복,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받은 도움이 너무나 많
은데도 불구하고 나는 과연 하느님께 무엇을 해드렸던가?' 생각해보
니 잘못한 것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하느님께 받은 자비와 용서,
사랑과 축복, 그리고 많은 은사들의 몇 백분의 일, 몇 천분의 이라도
감사하며 살았는가를 생각하니 내 죄가 얼마나 큰지 새삼 깊이 뉘우
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인 신자들, 특히 할머니들과 여자 신자들이 나에게
베풀어준 호의와 우정, 국내에서 국외에서 분에 넘치게 받았던 사랑
과 대접들, 그 선의와 애정에 감사하다는 표현조차 하지 않은 채 그
사랑에 오랫동안 무디게 살아왔구나, 나도 모르게 그들은 마땅히 그
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 마음이 굳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신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기억하지도, 감사하지도 않고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 나는 크나큰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빚은 내 일생 동안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것 같
았습니다. 그들의 너무나 큰 호의와 사랑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겠습
니까?
그전까지 나는 이미 회개할 것은 다 회개했기 때문에 큰 죄가 있다
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많은 신자들의 호의와
친절과 사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것
은 죽을 때까지 회개하고 뉘우쳐도 모자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
다.
하물며 하느님이 내게 베푸신 사랑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 없었
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미사 때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
니다." 하고 기도하면서 더 절실하게 가슴을 치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랑에 빚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고 나서부터 날마다
미사 때마다 이 참회예절이 그렇게 은혜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
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
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