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 아버님 집 50
동해시 아버님 집
아버님께서 살아계실 때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집에 갈 때가 있었다.
그 때 내 마음은 그리 어둡지 않았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오랜시간동안 기차를 타야만 했다. 한 겨울에도 차창밖으로 비치는 따스한 햇살과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면 마음이 덜 외로웠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기차를 타면 심심하기도 하고 잡념도 많이들고 배가 출출하기도 하다. 그래서 기차 안에 마련된 먹을거리와 PC를 이용하기도 했다. 또 성경을 읽고 기도할 때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 기차는 밤이나 새벽에도 운행할 때가 있어서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기도 해서 좋다. 강원도의 산들은 웅장하고 산다운 산과 계곡다운 계곡이 있어서 다른 곳보다 뛰어나다. 20여살 됐을 때 태백이라는 곳에 기차를 타고 갔을 때 강원도의 산자락에 거대한 시멘트 공장과 험준한 산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곳에 철로가 놓여져 신기하게도 기차가 움직일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해본 것 같다.
추위에 눈덮힌 광경이 눈앞에 선하다.
외딴 동해역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도 어느 정도를 가야 집에 도착한다. 아버님을 뵐 대면 자상하게 반겨주시곤 했다. 새벽에 들렀을 때도 잠도 안 주무시고 아들이 오는 모습을 반기기라도 하신 듯 하다.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진한 사랑이 배어 있는 모습 같아서 어린시절의 일들이 많이 떠오르기도 한다. 살아계실 때 자장면 한 그릇이라도 사드리며 효도하는 것이 돌아가신 뒤에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말이있다. 살아생전에 자주 아버님을 찾아 뵙지 못한 나지만, 뵐 때에 뭐 좀 드실려느냐고 말씀 드리기도 했다. 그럴때면 드시고 싶은 것이 없어서 사양하셔서 아버님 말씀 듣고 짧은동안 함께 있다가 왔는데, 적은 돈을 드리면 받지 않으시려고 하셨는데 드리고 오기도 했다. 이것이 하지 못했던 효를 조금이라도 실천하기라도 한 하나의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방편이 되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된다.
사람들은 추석이나 설 명절 때 고향가기 위해 기차를 많이 타곤한다.
이번 추석 때 동해에 있는 집에 갔다. 평소에 명절 때 잘 가지 않았던 나였다.
기차안에는 발디딜틈조차 없이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어 혼잡했다. 이렇게 혼잡하고 불편해하며 서서가도 고향을 향하는 마음은 그것을 초월해서 설레이고 행복한 마음으로 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형제 친척들을 만나려는 기쁨으로 마음은 벌써 집에 가 있는 듯 할 거라는 생각이다.
젊은 아가씨가 큰 가방을 옆에두고 서서가는 모습이 청순하다. 나중에 내 딸도 다른 지역에서 생활한다면 저런 모습으로 나를 찾아오겠지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 평소에 가차타고 가는 것보다 명절에 갈 때가 더 마음이 풍요롭고,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기차타면서 머리에 남을 좋은 모습들을 보면 생활에 힘을 얻게되어 소중하고 기쁜 추억이 된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첫 추석에 집으로 가니 동생들 가족들이 이미 와 있었고, 하룻밤을 묵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제사를 올렸다.
마음은 평온했고 동생들과 함께 제사드린 후에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그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행복했다.
평소에 조상님을 위해서 자주 제사를 드리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제사 드리는 순서를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성당에서나 조상님들을 위해서 미사예물을 올렸을 뿐이다. 제수씨와도 이야기도 나누고 했지만, 넉넉하게 전날 멋지게 한 턱 쏘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생각으로 그칠 뿐 경제사정으로 그것까지 도달하지는 못해서 아쉬웠다.
다음에 또 올 것을 기약하며 헤어지고 기차역까지 바래다주는 조카차를 타고 차 시간에 늦지 않게 동해역에 올 수 있었다.
추석 명절에 집에 가지 않고 아버님 기일에나 들르려 했는데, 생각이 바뀌어서 갑자기 기차에 올랐었다.
아무튼 동생들을 만나서 아버님께 함께 제사를 드렸으니 후회없는 시간이 되었다.
동해시는 거리는 멀지만 갈 때마다 생각과 마음이 다른 것 같고, 예전처럼 지루하게 느껴지지도 않은 것 같아서 마치 가까이에 위치한 집까지 느껴지는 것은 왠일일까.
2013.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