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암해변 61 (수정)
추암해변
철지난 인적드문 밤바다에 갔다. 넓디넓은 바다위에는 보름달이 걸려있다. 그것이 모래사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괜찮다. 그 아래로 성난 파도는 하얀입김을 토해내며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기세로 밀려오고 또 밀려온다. 마치 솜사탕같은 뭉게구름이 이곳저곳에서 상어나 고래가 출현하여 사람을 놀라게 하듯이 힘차게 물위를 펄적펄쩍 튀면서 오고 있다.
해변주위에 놓여있는 바위에도 파도가 세차다. 날이 추워서인지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고 밤이라 그런지 공포감마저 든다. 촛대바위가 세워져 있는 부근의 전망대에서 해가 바뀌는 첫날 해뜨는 광경을 보면 좋을 듯하다. 새해소망을 그리기 위해 사람들이 찾기에 부족함이 없을 그 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생각하노라면 기쁨에 찬 탄성이 절로 나올 것 같다.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모래가 너무 곱다. 마치 옅은 황설탕 같다. 사람인 나는 그걸 다 헤아릴 수 없겠지. 바다는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겨울의 찬 밤바다도 괜찮음을 알게 되었다. 바라볼만큼 바라봤지만, 며칠 머무르면서 실컷 바다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싶다. 그래서 그곳을 떠날 때는 가기가 싫을 정도로 고운 추억거리를 만들어 훗날 인생을 뒤돌아보는 아름다움으로 남고 싶다. 펼쳐진 바다를 관망하기에 좋은 위치에 자리잡은 작은 민박집이 아름답게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다를 바라보기에 아주 딱 좋은 그 집은 돗보여 너무좋게 보이기만 한다. 밤바다가 아름답게 보이는 건 쓸쓸하고 고요해서이기도 하다. 이 조용한 곳이 저세상보다 나을지 모르겠다. 천국에 드는 사람은 그곳이 낙원이겠지만, 그곳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고생이 되더라도 저 세상보다는 나을 것이다. 사람들의 다녀간 모습들의 흔적이 백사장의 발자국을 통해서 드러났다. 사람들은 고운꿈들을 거기서 새기고 돌아갔겠다.
거센 파도는 천둥이 세차게 몰아 치기전의 예고편 같기도 하다. 밤바다의 파고가 높아서 해안가까이에 있으면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다. 차가운 공기가 있으니 겨울다운 바다를 더 느끼게 했다. 인생을 돌아보게끔 하는 바다가 있으니 좋다. 어쩌면 겨울바다는 죽음을 연상케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다는 푸르지만 겨울바다는 더 파란느낌이다. 겨울추위에 사람들의 보드라운 입술은 겁에 잔뜩질린 사람처럼 보라색 같은 푸르름을 뗘서 딱하게 보인다. 또 날씨가 춥고, 얼어붙은 땅이 겨울이다보니 사막은 아닐지라도 쓸쓸하게 보이기에 알맞다. 그러니 인생도 쓸쓸하고 덧없음을 느낄수 있다. 쓸쓸한 인생을 바다를 바라보며 아픈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넘실거리는 바다와 친구가 되니 좋다. 넓은 바다를 자주 바라볼수록 마음도 맑아지고 넓어 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파도치기위해 그 먼곳을 밀려온 그 힘은 어디서 나온걸까. 자연의 위대한 힘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 같아 한없이 부끄럽다. 어두컴컴한 바다를 가로등이 등대처럼 지키고 있어 덜 외롭다. 밤을 지새워도 지루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해변에 내가 서있다. 겨울바다를 보고 싶어서 만리포나 태안 해안국립공원같은 곳을 생각하기도 했다. 언제는 만리포에 처음갔었는데, 바다다운 진면목을 연상케한다. 하지만 강원도 동해시에 올 기회가 있어서 그 곳 추변해수욕장을 들렀다. 또 촛대바위를 보고 싶은 생각을 했었다.
촛대바위옆의 바위와 전망대의 소나무가 잘 어울어져 아름답다.
여름철에 사람들이 많이 찾았을 추암해변에 파도가 쓸쓸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치는 파도는 오묘하고 놀랍다. 자연바람을 쐬고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아 가벼운 느낌이다.
밤바다를 이렇게 가까이 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싶다. 세차게 파도가 밀려와 ‘팍’소리와 함께 물거품을 내며 사라진다. 파도는 어느 세파에도 얽메이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나는 손과 팔과 허리를 놀려 기지개를 펴고 스트레칭도 해본다.
작은 어촌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 곳 추암해변에 몇 안되는 회집과 수퍼가 있고, 사람들이 차를 마실 공간이 있다. 그나마 그곳들이 있기에 관광객들은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마음바다에 그림을 담을 수 있는 바다와 파도와 모래사장과 가로등과 달과 집들이 있으니 겨울의 추위가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왠일일까.
2013.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