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영화를 보고
‘변호인’ 영화를 보고
영화에 보면 ‘돼지국밥’ 이라고 쓰여진 집이 있어 ‘국밥’이 생각나서 적어본다.
지금 먹는 국밥도 맛있지만, 어렸을 때 먹었던 국밥은 더 맛이 있었던 것 같다. 할아버님께서 저의 집에 오시면 국밥을 드셨다. 우리 집에서 식당을 해서 그렇다.
요즘은 소머리 국밥, 소고기 국밥, 순대국밥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국밥’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고, 갈비탕, 설렁탕, 기력탕등 ‘탕’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국밥’ 이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간다.
국밥을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마음든든, 몸든든하다.
또 하나의 장면을 보면 하도 고문을 심하게 해서 고문을 당한 젊은이는 겁에 질려 면회왔는데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거다. 그의 엄마를 보았을 때
야 조금 말이 풀리고 부둥켜안고 울었다.
구타를 비롯해 전기고문, 물고문, 잠 안재우기등을 했나보다.
몸에 멍이 많이 들어 안쓰럽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의 고통에는 못 미치겠지만, 말할수 없는 강제고문을 당하고 진술서도 짜맞추기식으로 하게끔했다. 그렇게 하라는 대로 안하면 또다시 가옥한 고문을 당해야 하기에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생활했다.
고문을 가한 사람은 사람을 혹사시켜놓고, 죄의식이나 식은 땀이라도 흘리는지 모르겠다.
동물잡는 식으로 잔인하게 사람을 대해야만 하나.
고문하지 않고 순수하게 말로도 해서 법정에서 바르게 판결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죄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래도록 사람이 이 세상에 살지 않는다. 그러니 참으로 사람을 존중해가며 불쌍히 여기며 살도록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