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문화와 기술 70
우리 민족의 문화와 기술
1. 우리 겨레의 터전과 뿌리
동북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한 한반도는 5,000년 동안 우리 겨레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우리 민족은 북방 유목민 계열과 남방 계열이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성립되었는데, 이는 단군신화나 고대 삼국의 시조 설화에서 잘 나타난다.
다양한 세력은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면서 점차 동류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의 기후가 조화를 이루어 사계절이 뚜렷하며, 사람들이 생활하기 좋은 조건을 갖춘 지역이었다. 우리 겨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때로는 북으로 중국 대륙의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였고, 바다를 통해 교류하면서 동북아시아 문화교류의 전달자로서 우리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2.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와 민족 기상
삼국은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국가체제를 정비하였다. 고구려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지속적인 긴장상황 속에서 국가의 면모를 갖추어 갔다. 이로 인해 고구려의 문화는 힘이 있고, 역동적인 느낌이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백제는 상대적으로 지방 세력과 귀족의 힘이 강하였고, 적극적으로 선진문물과 제도를 수입하여 화려하고 세련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역시 백제문화의 진수는 불상과 토기등에 보이는 소박함과 해학이 넘치는 여유에 있다.
신라는 가장 늦게 출발하였지만 최종적으로 삼국의 문화를 완성시킨 나라였다.
감은사지석탑에 보이는 기술은 삼국통일 후 고구려와 백제의 사찰문화가 가미된 삼국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3. 백제의 문화교류
백제는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남조의 선진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무령왕릉은 백제의 일반적인 무덤과는 달리 중국 양 나라에서 유행하는 무덤양식을 수용하여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내부에서 중국제 도자기와 화폐가 출토되었다.
백제는 발전시킨 문화를 이웃일본에 전파하는 교량 역할에도 충실했다. 무령왕릉의 목관은 일본에서 생산된 금송으로 만들어졌으며 백제가 전파한 기술과 문화는 일본의 국보 1호 코류지 미륵반가사유상을 탄생시켰다. 이처럼 백제를 통해 중국과 일본 열도로 이어지는 문화적 네트워크는 동아시아 한자 공유문화권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일조를 하였다.
4. 백제금동대향로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12월 능산리 절터의 서쪽 한 구덩이에서 발견되었다. 능산리 절터는 성왕(聖王)을 기리기 위한 백제 왕실의 원찰로 추정되며, 금동대향로는 국가적 제의와 같은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향로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형태와 내용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무엇보다도 백제인들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향로에 담았고, 뛰어난 금속공예기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백제의 7세기 초 우수한 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까지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크게 받침과 몸통,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지하. 지상. 천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지하는 다리를 곧 추세운 용이 향로의 몸통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지상은 불교의 이상향인 연꽃으로 만들어진 세계로, 불국토 사상을 보여준다. 뚜껑은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표현한 것으로 23개의 산과 각종 호랑이 사슴. 기마수렵상. 무인상 및 악기를 연주하는 5인의 악사가 새겨져 있다.
뚜껑의 맨 위에는 세상이 태평할 때만 나타난다는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자리하고 있는데, 생동감 넘치게 표현되었다.
5. 국제적인 문화 국가 고려
고려는 새로운 통일 왕조를 수립하여 우리 겨레의 정치. 사회. 문화적 통합을 이루었다. 삼국의 각기 다른 문화를 융합하여 개방성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민족문화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고대사회에서 중세사회로의 발전을 이루었다.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수용하여 중앙 집권적인 국가 체제를 확립하고, 귀족 중심의 우아하고 세련된 문화를 꽃피웠다. 특히 청자와 인쇄술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고려는 불교의 힘을 빌려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려는 목적에서 팔만대장경판을 만들었다. 1251년 완성된 팔만대장경판은 방대한 내용을 담았으면서도 완벽한 제작 솜씨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재현된 해인사 장경판전에서는 스님들이 팔만대장경을 인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6. 고려청자
고려는 신라와 발해의 도자기 전통과 기술을 토대로 중국 송나라의 기술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했다. 순청자는 그윽한 색과 다양한 형태를 가지는데, 특히 그 빛깔은 맑은 가을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투명하고 고운 빛을 띤다. 12세기 중엽에 발달한 상감청자는 표면에 무늬를 새겨 넣는 상감법을 자기에 도입한 것으로 고려만의 독창적인 기법이었다. 상감청자는 무늬를 훨씬 더 다양하고 화려하게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청자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7. 고려의 금속활자
고려의 과학기술중 가장 뛰어난 것이 인쇄술이다. 목판인쇄술의 발달과 청동 주조기술의 발달, 금속활자에 적합한 먹과 종이의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13세기 초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개발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간행된 금속활자 인쇄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상정고금예문(1234년)으로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든 1450년보다 무려 200여 년이나 앞선 것이지만 실물이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은 1377년 청주의 흥덕사에서 간행된「직지」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고려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2001년 9월에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8. 조선의 과학기술
조선은 통치의 이념을 농사와 백성 중심으로 하였기에 이를 위한 과학기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발명품으로 강수량을 측정하는 측우기,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와 물시계, 토지를 측량하는 인지의, 천체의 운행과 현상을 관측하는 혼천의와 간의등이 있다. 또한 고려시대 이래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술을 이어 나갔고, 우리의 현실에 맞는 천문학, 농학, 의약학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는 조선의 과학기술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2014.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