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군대시절 이야기 (수정)

사랑의 기쁨 2014. 4. 4. 15:51

 

 

군대시절 이야기

 

 

군대 가는 날, 내 동생의 배웅을 받고 내수에서 집결해서 논산 훈련소로 갔다.

또한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 채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의정부에 있는 보충대에 있다가 수원에서 서쪽방향으로 가서 서해안에 위치한 제부도 앞 해안초소에 배치됐다. 탐조병으로 야간에 해안을 지키는 경계병으로 바다에 간첩선이 침투하는지를 밝혀주는 조명지기 역할을 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의 한파가 볼을 때려서 병사들을 힘들게 했다. 칠흑같은 어둠속의 바다를 바라보며 외로이 경계근무를 서야했거나, 2인1조가 되어 단기사병과 함께 초소를 지켰다. 해안에 있다보니 재미나는 일도 있기도 하다.

소라를 잡아서 삶아 먹기도 하고, 갯벌에서 길쭉한 맛을 잡기도 하였다. 또 꿩을 잡아서 고기를 먹었다. 맛이 있었다. 그 맛이 마치 닭과 같다. 지금 꿩잡던 모습의 산을 그려본다. 아담한 동산과 같다고나 할까. 험하지 않은 조용한 곳이다. 내가 머문곳의 막사는 마치 별장같은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이다. 그 밑에는 검푸른 바닷물이 나를 부르며 넘실거렸다. 낮에는 어통소라는 곳에서 교대로 근무할 때가 있었다. 썰물과 밀물이 있어서 물이 갈라져 바닷길이 통째로 들어나면 제부도 어민들이 그 곳을 오갔다. 가끔씩 우리 군인들을 위해서 잡은 생선을 줄 때가 있다. 성탄절쯤에는 마을에 있는 학생들이 위문을 와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아직도 그 모습이 새록새록하다. 예쁘고 청순한 학생들이 군인아저씨를 기쁘게 했다. 그 아이들은 이제 중년부인이 됐을거다.

내 부하의 어느 사병이 편지를 개봉하고 누군가와 주고받는 모습에 셈이났다. 아마 나는 편지 주고받을 사람이 없어서 그랬나보다. 단한번 받은 위문편지에 답장을 한 것 기억밖에 없는 것 같다. 그 때는 편지를 한창 쓸때이다. 편지를 안 쓰던 사람도 군대가면 편지를 자연스럽게 쓰게된다.

나는 군 생활하면서 아찔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한 번은 어민들이 살고있는 제부도에 초대돼서 갔다. 제부도는 내가 머물고 있는 초소에서 2.5km에 위치한 섬으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다. 막걸리인줄 알고 홀짝홀짝 마셨던 술에 취했나보다. 눈을 뜨니 막사안의 이부자리안에 내가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누군가 운전한 경운기에 실려서 왔나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아찔했겠는가. 그것도 바다를 가로지르며 왔을텐데, 무사하게 해주었던 누군가에게 고마울 뿐이다. 아마 그 술이 동동주였던것 같은데, 매력있는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 맛이 그만이었던 것 같다.

또 한 때는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내가 술을 마시고 목이 찰 만한 깊이의 바다에 들어가 혼 줄 났다. 간신히 나왔긴 했지만 정말 죽을 뻔 했던 아찔한 순간이 아닐수 없다. 차마 생각조차 하기 싫고, 생각하면 무섭기까지 하다. 그 곳에서 빠져 나온 것이 마치 기적과 같다는 생각이 들며, 하늘이 도와주었던 것 같다. 해안에서 사병들과 같이 찍었던 추억의 사진도 있다. 정말 흐르는 물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생각지못했던 급류에 사람이 휩쓸려가지도 않는가.

또 한 번은 야간투입을 위해서 준비해 놓은 크레모어를 잘못 만져서 뇌관이 폭발했다. 그것이 터지는 바람에 나와 단기사병 2명에게 파편이 튀었다. 나는 머리에 그것이 맞는 순간 큰 느낌없이 공에 맞은 것 같은 생각에 멍했고 불안했던 것 같다. 죽음같은 생각은 했는지 안했는지 모를정도로 이상했던 것 같고, 불길한 생각은 있었던 것 같다.

연병장에서 선임하사님이 계신 막사로 올라가려고 하는 중에 부하사병이 내몸을 부축했다. 그런 후에 수원으로 이송돼어 치료를 받았다. 어느때인가 나는 앞으로 10년정도는 더 살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두통이 있을 때에도 그 때의 사고와 연관도 지었다.

생명을 얻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음에 너무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 때 위기에서 도와 준 K 사병과 선임하사님과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신 아버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나 때문에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웠던 두 명의 단기사병에게 미안함을 표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죽을 뻔했던 고비에서 살아난 것을 생각해 보았다. 입대하기전에 고모님 댁에 들렀는데, 아마 그분이 내 등뒤에 크게 십자가를 그려주신 기억을 했다. 그 때 고모님은 천주교 신자였지만, 나는 세례받지 않은 외인이었다. 하느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 같다. 그리고 부대에서 생활한 사병중에 가톨릭 신자가 있어서 그의 도움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봤다.

지금은 나는 가톨릭 신자가 되어서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방인이었을 때에도 죽을 뻔한 고비와 어려움에서 날 구해주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매사에 조심하며 하루하루 잘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다.

                                                                                                                                                               2013.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