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글

모시는 마음

사랑의 기쁨 2012. 7. 18. 17:36

찬미예수님!

 

뒤늦게 만나 사랑하다
인생을 알고 신앙을 선택한 작가 8인의 가톨릭 입문 이야기

공선옥 - 눈물로 지은 집
우리 인생에서 사랑이 없다면,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눈물 흘리며 고통스러워할 일도 오늘 내가 이렇게 땀 흘리며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모시는 마음

가만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존재들임 과 동시에 아무리 힘들어도 삶을 지탱해 주는 질기고도 강력한 끈이 었다. 나는 어쩌면 아이들이 없었으면 아직도 성당 같은 데는 죽어 도 다닐 생각도 안 하고 살았을 것 같다. 홍 가타리나 수녀님을 만나게 된 동기도 우리 아이 때문이었듯, 내가 내 안의 주님을 알아보고 모시게 해 준 것도 다 아이들이었다. 젊었던 나는 한때 아이들의 존재가 너무도 힘겨웠다. 아이 낳고 아 이 키우기가 축복과 기쁨이 되는 경험을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나는 누군가 우리 둘째 아이를 입양시키자는 말에 순간적으로 마음 이 흔들렸다. 그러나 또한 순간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는 마음이 솟 구쳤다. 아이를 다른 곳에 입양시켜 놓고 죄책감으로 평생을 고통 받으며 살 것이 나는 두려웠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고생스럽지만 아이를 입양시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고통스러운 것 보다 고생스러운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아이 아빠 없이 혼자서, 가난한 내가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은 고 생스러운 것이기는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아이들은 커가 면 커갈수록 나를 고생하게 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나를 감사하게 하는 존재들이 되어 갔던 것이다. 둘째 아이가 한때 학교를 안 가서 내 속을 썩였다. 나는 그때 정 말, 아이 때문에 힘들었다. 저도 힘들고 나도 힘들었던 시기가 지나 고 지금 아이는 기숙사 있는 학교를 다닌다. 아이가 내게 편지를 보 냈다. 편지 말미에 아이는 썼다. "엄마, 이제 은혜 입는 딸이 아니라 은혜 갚는 딸이 되겠어요." 나는 그만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그때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그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하느님, 제게 이런 딸을 주셔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내 마음에서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해 준 아이들, 원망하는 마음 이후에 생긴 감사하는 마음이니, 더 더 욱 감격할 수밖에. 내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해준 내 아이들. 나는 확실히 알았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어떤 기운'의 정체를.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 이었던 것이 다.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가도록 하시는' 내 안의 주님, 감사합니 다. 나는 드디어 내 안에 주님을 '모신' 것이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찬미예수님!

 

뒤늦게 만나 사랑하다
인생을 알고 신앙을 선택한 작가 8인의 가톨릭 입문 이야기

공선옥 - 눈물로 지은 집
우리 인생에서 사랑이 없다면,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눈물 흘리며 고통스러워할 일도 오늘 내가 이렇게 땀 흘리며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모시는 마음

가만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존재들임 과 동시에 아무리 힘들어도 삶을 지탱해 주는 질기고도 강력한 끈이 었다. 나는 어쩌면 아이들이 없었으면 아직도 성당 같은 데는 죽어 도 다닐 생각도 안 하고 살았을 것 같다. 홍 가타리나 수녀님을 만나게 된 동기도 우리 아이 때문이었듯, 내가 내 안의 주님을 알아보고 모시게 해 준 것도 다 아이들이었다. 젊었던 나는 한때 아이들의 존재가 너무도 힘겨웠다. 아이 낳고 아 이 키우기가 축복과 기쁨이 되는 경험을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나는 누군가 우리 둘째 아이를 입양시키자는 말에 순간적으로 마음 이 흔들렸다. 그러나 또한 순간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는 마음이 솟 구쳤다. 아이를 다른 곳에 입양시켜 놓고 죄책감으로 평생을 고통 받으며 살 것이 나는 두려웠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고생스럽지만 아이를 입양시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고통스러운 것 보다 고생스러운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아이 아빠 없이 혼자서, 가난한 내가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은 고 생스러운 것이기는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아이들은 커가 면 커갈수록 나를 고생하게 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나를 감사하게 하는 존재들이 되어 갔던 것이다. 둘째 아이가 한때 학교를 안 가서 내 속을 썩였다. 나는 그때 정 말, 아이 때문에 힘들었다. 저도 힘들고 나도 힘들었던 시기가 지나 고 지금 아이는 기숙사 있는 학교를 다닌다. 아이가 내게 편지를 보 냈다. 편지 말미에 아이는 썼다. "엄마, 이제 은혜 입는 딸이 아니라 은혜 갚는 딸이 되겠어요." 나는 그만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그때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그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하느님, 제게 이런 딸을 주셔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내 마음에서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해 준 아이들, 원망하는 마음 이후에 생긴 감사하는 마음이니, 더 더 욱 감격할 수밖에. 내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해준 내 아이들. 나는 확실히 알았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어떤 기운'의 정체를.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 이었던 것이 다.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가도록 하시는' 내 안의 주님, 감사합니 다. 나는 드디어 내 안에 주님을 '모신' 것이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