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암해변 - 수정 2
추암해변
아버님 기일 제사가 있어서 동해에 있는 집에 들를겸해서 동해시 인근에 있는 추암해변에 가고 싶었다. 그곳에서 찍은 아름다운 촛대바위 사진을 화장실에서 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몇차례 아버님 집에 들렀었는데 내려오는 길에 추암해변을 가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가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밤바다를 보게 되었다.
동해에 가기위해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청주 오근장역에서 기차를 타고 갈려고 했으나 시내버스를 잘못타는 바람에 엉뚱한 곳에 도착했다. 어쩔수 없이 시간관계상 오창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그런후 동해로 향했다. 시간과 돈을 낭비해서 속상했다. 동해에 도착해서 추암해변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처음가는 곳이라 지리를 잘 몰라서 승객에게 어디서 내려야하는 지 물어보았다. 한참을 간 후에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곳에 도착하니 고요해서 좋았다. 도시는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시끌버끌한데, 그 곳은 조용했다. 마치 작은 섬에 간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편했다.
철지난 인적드문 추암해변 밤바다에 가니 넓디넓은 바다위에는 보름달이 걸려있었다. 그것이 모래사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 아래로 성난 파도는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기세로 밀려오고 또 밀려왔다. 마치 이곳저곳에서 상어나 고래가 출현하여 사람을 놀라게 하듯이 솜사탕 같은 뭉게 구름이 힘차게 물위를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뾰족뾰족한 돌로 된 촛대바위가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었다. 촛대바위가 세워져 있는 전망대에서 해가 바뀌는 첫날 해뜨는 광경을 보며 새해소망을 그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그 곳의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모래가 너무 고왔다. 마치 옅은 황설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바다는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겨울의 찬 밤바다도 괜찮음을 알게 되었다. 며칠 머무르면서 실컷 바다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싶었다.
그곳을 떠날 때쯤이면 고운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서 훗날 인생을 뒤돌아보는 아름다움으로 남기고 싶었다. 펼쳐진 바다를 관망하기에 좋은 위치에 자리잡은 작은 민박집이 아름답게 보였다. 밤바다가 아름답게 보이는 건 쓸쓸하고 고요해서이기도 하다. 이 조용한 곳이 저세상보다 나을지 모르겠다. 천국에 드는 사람은 그곳이 낙원이겠지만, 그곳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고생이 되더라도 저 세상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녀간 모습들의 흔적이 백사장의 발자국을 통해서 드러났다. 사람들은 고운꿈들을 거기서 새기고 돌아갔을 것 같다.
거센 파도는 천둥이 세차게 몰아 치기전의 예고편 같기도 했다. 밤바다의 파고가 높아서 해안 가까이에 있으면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다. 차가운 공기가 있으니 겨울다운 바다를 더 느끼게 해주는 듯 했다. 인생을 돌아보게끔 하는 바다가 있으니 좋았다. 어쩌면 겨울바다는 죽음을 연상케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다는 푸르지만 겨울바다는 더 파란느낌이다. 사람들의 보드라운 입술이 겁에 잔뜩질린 사람처럼 보라색 같은 푸르름을 띄고 있는 것이 가엾게 보였다. 또 날씨가 춥고, 얼어붙은 땅이 겨울이다보니 사막은 아닐지라도 쓸쓸하게 보이기에 알맞다. 그러니 인생도 쓸쓸하고 덧없음을 느낄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아픈 마음을 달래보고 싶었다.
넘실거리는 바다와 친구가 되니 기분이 좋았다. 넓은 바다를 자주 바라볼수록 마음도 맑아지고 넓어 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파도를 치기위해 그 먼곳을 밀려온 그 힘은 어디서 나온걸까.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 같았다. 어두컴컴한 바다를 가로등이 등대처럼 지키고 있어 덜 외로운 것 같다. 밤을 지새워도 지루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해변에 내가 서 있었다. 겨울바다를 보고 싶어서 만리포나 태안 해안국립공원같은 곳을 생각하기도 했다.
여름철에 사람들이 많이 찾았을 추암해변에 파도가 쓸쓸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치는 파도는 오묘하고 놀라웠다. 자연바람을 쐬고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밤바다를 이렇게 가까이 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싶다. 세차게 파도가 밀려와 ‘팍’소리와 함께 물거품을 내며 사라진 것을 보면 파도는 어느 세파에도 얽메이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작은 어촌이라고도 할 수 없는 추암해변에는 몇 안되는 회집과 수퍼가 있고 사람들이 차를 마실 공간도 있다. 그나마 그곳들이 있기에 관광객들은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마음에 그림을 담을 수 있는 바다와 모래사장, 그리고 가로등과 집들이 있으니 겨울의 추위가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마음에 있었던 상처와 스트레스를 치유해 주는 것이 바로 자연의 위대한 힘이 아닌가 싶었다. 나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더 인내할 수 있는 힘을 배웠다. 파도를 치기 위해 멀리서 밀려온 물살을 보며 인생의 험난한 길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보람을 느끼게 되었고 앞날이 따뜻해지는 생활로 이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