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추암해변 2차수정지도

사랑의 기쁨 2014. 8. 3. 12:14

추암해변

명절이 되면 동해에 있는 본가에 갈때가 있다. 그때마다 인근에 있는 추암해변에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버렸다. 이번에는 돌아가신 아버님 첫 기일에 맞추어 동해로 가기 위해, 추암해변의 낮광경을 보기 위해 일찍 동해에 있는 본가로 간다. 청주에서 기차를 타야하는데 시내버스를 잘못타는 바람에 구이동을 거쳐 강남터미널로 가야만 했다. 동해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한번의 실수로 이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한 것이 너무나 속상했다. 그래서 대구에서 기차타고 올라오는 동생을 기다리면서 밤바다를 보게 되었다.

밤이 되자 넓디넓은 바다위에는 보름달이 걸려있었다. 그것이 모래사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 아래로 성난 파도는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기세로 밀려왔다. 마치 상어나 고래떼가 출현하여 사람을 놀라게 하듯이 솜사탕 같은 뭉게 구름이 힘차게 물위를 펄쩍거리고 있었다.

추암해변에는 뾰족뾰족한 돌로 된 촛대바위가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었다. 마치 기암괴석처럼 보였다. 바다에 그것이 있으니 신기하기도 했다. 촛대바위가 세워져 있는 전망대에서 해가 바뀌는 첫날 해뜨는 광경을 보며 새해소망을 그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그 곳의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해수욕장의 모래는 너무 고왔다. 마치 옅은 황설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바다는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겨울의 찬 밤바다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머무르면서 바다를 실컷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곳을 떠날 때쯤이면 고운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서 훗날 인생을 뒤돌아보는 아름다움으로 남기고 싶었다. 저멀리 펼쳐진 바다를 관망하기에 좋은 위치에 작은 민박집이 아름답게 보였다. 밤바다가 아름답게 보이는 건 쓸쓸하고 고요해서 그런 것 같다. 이 조용한 곳이 저세상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천국에 있는 사람은 그곳이 낙원일지몰라도 그곳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생이 되더라도 저 세상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은 백사장의 발자국을 통해서 드러났다. 사람들은 고운꿈들을 거기서 새기고 돌아갔을 것 같다.

거센 파도는 천둥이 몰아 치기전의 예고편 같기도 했다. 밤바다의 파고가 높아서 해안 가까이에 있으면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갈것만 같았다. 차가운 공기가 있으니 겨울다운 바다를 더 느끼게 해주는 듯 했다. 가끔씩 인생을 돌아볼수 있는 바다가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았다.

그러나 겨울바다는 사람들의 보드라운 입술이 겁에 잔뜩질린 사람처럼 보라색 같은 푸르름을 띄고 있는 것이 가엾게 보였다. 그런것을 보면 겨울이다보니 더 쓸쓸하게보였는지도 모른다. 인생이 쓸쓸하고 덧없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바다와 친구가 되니 기분이 좋았다. 넓은 바다를 자주 바라볼수록 마음도 맑아지고 넓어지기 때문이다.

파도를 치기위해 먼곳을 밀려온 그 힘은 어디서 나온걸까.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 같았다. 어두컴컴한 바다를 가로등이 등대처럼 지키고 있어 덜 외로운 것 같다. 밤을 지새워도 지루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해변에 내가 서 있었다. 겨울바다를 보고 싶어서 만리포나 해안국립공원같은 곳을 생각하기도 했다.

여름철에 사람들이 많이 찾았을 추암해변에 파도가 쓸쓸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치는 파도는 오묘하고 놀라웠다. 자연바람을 쐬고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밤바다를 이렇게 가까이 본 기억이 없기에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싶었다. 세차게 파도가 밀려와 ‘팍’소리와 함께 물거품을 내며 사라진 것을 보면 파도는 어느 세파에도 얽메이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작은 어촌이라고도 할 수 없는 추암해변에는 몇 안되는 회집과 슈퍼가 있고 사람들이 차를 마실 공간도 있다. 그나마 그곳들이 있기에 관광객들은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마음에 그림을 담을 수 있는 바다와 모래사장, 그리고 가로등과 집들이 있으니 겨울의 추위가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마음에 있었던 상처와 스트레스를 치유해 주는 것이 바로 자연의 위대한 힘이 아닌가 싶었다. 나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