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곡성 기차마을 108

사랑의 기쁨 2015. 1. 18. 10:57

곡성 기차마을

 

곡성 기차마을에 갔다. 섬진강 증기기관차를 타고 싶었다. 그곳은 예뻤다.

증기기관차를 타기전에 약간의 여유시간이 있어서 언젠가 가봤던 장미공원에 들러 바삐 돌아다녔다. 소원을 비는 북을 세차게 두드려댔다. 내가 바라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길 소망해 보고 싶었다. 좋지 않은 습관도 버리고 기쁘고 즐겁게 살고 싶기도 했다. 매년 5월하순에서 6월초순에 세계 장미축제가 장미공원에서 열린다니 그 때 가보게 되면 아름답고 예쁜 장미를 실컷 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곡성 기차마을에 있는 증기기관차는 일제 강점기부터 운행되어왔다고 한다.

1호실과 3호실이 같은 구조로 되어있었고, 2호실은 다른 구조로 되어있었다.

같은 구조로 된 1,3 호실은 입석과 좌석을 구분해 놓았고, 2호실은 앉아서 가게끔 해 놓았다. 서서가는 사람들은 마치 시내버스의 손잡이를 잡고 가는 것 같았다.

그곳이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기도 하단다. 증기기관차를 처음으로 타고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 갔다왔다. 승객을 실은 세 칸짜리 열차는 처음 타 보았지만 거기에 탄 사람들이 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또 조용하고 소박한 분위기였다. 증기기관차는 화통소리를 우렁차게 내며 칙칙였다. 속도는 느려서 요즘 신세대 쾌속 기차와는 달리 느릿하게 갈 수 있어서 상념에 젖기에 좋았다. 일제강점기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열차를 타고 왕래 했었을까. 이 기차는 마을 사람들에게 어려운 가운데 소중한 교통수단이 되어왔을 것 같았다.

섬진강 증기기관차는 곡성역을 출발하여 가정역으로 출발하였다. 기차밖의 배추밭에는 배추잎이 널브러져 있는가 하면 일부는 수확하지 않은 채 남아 떠 있었다. 정겹게 보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져 늦가을의 느낌을 말해주는 듯 했다. 이때쯤의 여행은 어느 계절보다 인생을 돌아보기에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다가올 추위를 생각하니 외로운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기차안에는 물건을 팔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옛 고교시절을 떠올리게끔 한 장본이었다. 교련복을 입고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요즘은 교련복을 보기가 쉽지않다. 먹을거리를 싣고 다녀서 예전에 즐겨 먹었던 마른 오징어, 뽀빠이 과자등이 반갑게 보였다. 옛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즐거웠다.

4인가족이 열차를 탔는데 엄마와 아들은 앉아서 가고 딸과 아빠는 서서 갔다. 부부가 대화를 일절하지 않았고 수척해 보였다. 엄숙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딸이 오빠에게 말을 건넬 뿐이었다. 아들과 엄마는 닮아서 내 눈은 자꾸 모자母子를 쳐다보게 되었다. 특히 여인에게 쏠려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순수하게 보였고 담백하게 보였으며 아무 구김살없는 사람처럼 맑게 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알지못할 고통과 고민이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어 동정이 갔다. 나중에는 딸과 아들이 교대를 해서 딸이 엄마앞에 앉아있었는데 아들이 앉았을 때보다 엄마에게 더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풍기는 모성이 드러났지만 친근감은 발견하기 어려운 모습이었고, 많이 힘들어 하는 느낌을 받아서 마음 한 켠으로 씁쓸했다. 어쩌면 그 모습이 내 모습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정역에 도착하여 출렁다리를 걸어갔다왔었는데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좀더 섬진강을 느끼고 은어를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예전에 곡성기차마을에 갔던 때가 있었는데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증기기관차를 타지 못했었다. 참 아쉬웠다. 먼 거리를 갔는데 말이다. 겨울이었던가 그랬는데 기차시간을 미리 알고 갔었더라면 시간조절해서 기차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하루에 4회운행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번에는 늦지않은 시간에 타서 기분이 좋았다. 마음도 설레였다. 진짜 추억의 열차를 타서 생각에 남았고, 앞으로도 생각할 것 같다. 빠르게 달리는 열차에 비해 좋지않은 환경이라도 사람사는 운치를 피부로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다. 또 많은 풍경의 볼 거리는 못되었지만 오늘도 은빛 모래위에 투영되어 흐르는 5대강의 하나에 속하는 섬진강의 맑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값진 기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마냥 어린이처럼 들뜬 마음이었다.

섬진강은 관망하기에 좋았고, 고요함을 주었다. 그리고 전형적인 시골내음을 느낄 수 있는 풍경이어서 마음도 편했다. 산에다가 곡성 심청이라고 누군가 무늬를 놓아서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곡성여행지를 알렸다. 곡성역에 KTX도 개통되었기도 하다. 가정역에서 머문 30분은 어쩌면 평화의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출렁다리를 갔다오는 것도 좋겠지만, 그곳을 돌아보지 않고 고요히 산과강을 관망하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일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기차가 머물다가 다시 온 길로 되돌아가는 간이역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른거린다. 열차가 그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는 그 곳. 어쩌면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쓰여진 녹슨 기차와 절단된 철로를 연상케하고 만다. 그러나 그곳을 왕래하는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기에 오늘도 섬진강 증기기관차는 전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14.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