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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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꽃동네에 갔다. 도착 하기전에 오창의 많은 이파트 숲사이를 지나서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바위에 새겨진 꽃동네 입구에 들어섰다. 그리고 언덕배기를 올라 많은 나무와 넓은 잔디를 지나서 사랑의 연수원에 도착했다. 연수원앞에는 각지에서 온 버스가 즐비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서 기도하고 교육을 받는다. 아픈사람들을 비롯해서 많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자신도 반성하며 더 성숙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꽃동네는 최귀동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서 생겨났다.
76년 5월, 사제서품을 받은 석 달 뒤 음성 무극천주교회 본당 신부로 오게 된 오웅진 신부님이 음성으로 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9월 어느날 해질 무렵, 서쪽 하늘을 곱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노을 아래서 성당 앞마당을 쓸고 있는 오 신부님 앞을 넝마를 걸친 한 거지 할아버지가 동냥 깡통을 들고 지나갔다. 오 신부님 자신도 모르게 그 할아버지 뒤를 따라갔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움막 앞에 발을 멈춘 할아버지를 따라 움막 안으로 들어간 오 신부님 앞에는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혹은 정신장애로 도저히 혼자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여럿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저마다 환한 얼굴로 할아버지를 반갑게 맞았다. 그동안 최 할아버지는 혼자서 동냥을 해가며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부님이 가지고 있던 시멘트 1포값인 1,300원의 미약한 돈으로 벽돌을 쌓기 시작해서 수 많은 우여곡절과 진통을 거듭하는 가운데 오늘에 이르러 거대한 꽃동네가 탄생됐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다.
창설자는 오웅진 신부님이시다. 마치 황무지같은 외도(外島)를 창립했던 이창호님처럼 땅을 개간하여 큰 업적을 이루었다. 얼마나 많은 각고끝에 이렇게 놀라운 업적을 이루게 되었는가. 이 곳은 수십만의 병자들과 아기를 낳지 못하던 사람이 오 신부님을 찾아와서 병도 고치고 아기를 낳는 등 놀라운 일이 이루어진 기도와 교육의 장소이다.
이렇게 큰 사회복지 단체가 있어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은인들의 후원으로 도움을 받게 되며,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큰 기쁨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밖에도 좋은 일을 하는 단체들이 많이 있다.
나는 꽃동네와 인연을 가진 것이 족히 20년이 넘었다. 예전에 꽃동네를 그냥 혼자 가보고 싶어서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그 후로 행사가 있을 때 가곤 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진정 꽃동네의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한 번도 봉사를 하지 않았다. 머리로만 딱한 사람을 생각했지, 행동으로 옮겨서 하지 않아서 참다운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참 내가 생각해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시내에서 가끔 구걸하는 사람이 있어도 돈통에 돈을 집어 넣지 않고 그냥 지나가기도 했다.
꽃동네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봉사하며 체험하고 돌아갔겠는가.
종교와 국적을 초월한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그 곳을 오고갔다. 그리고 그들이 체험한 것을 아름다운 글로 남기기도 했다.
꽃동네의 사랑 운동장은 잔디가 드넓다. 그 질도 좋고 보기에 너무 아름답다. 시내에 있는 일반학교의 운동장보다도 더 넓다. 주위에는 산이 있고, 혼자 있어도 질리지 않는 조용한 최적의 장소이다. 이런 곳에서 온종일 있고 싶은 마음이 든다.비록 날씨는 덮지만, 푸른 바다라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구상을 해가며 좋은 꿈을 품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곳은 인조 잔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그나마 흙으로 된 운동장은 자연스레 옛 추억이 묻어나기 때문에 그런대로 좋다.
온통 시멘트로 도색한 이 시대에, 흙이란 얼마나 귀하냐. 또 얼마나 소중하냐. 우리는 이 세상에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존재이기에 더 없이 그것이 그립지 않을는지.
산과 가로수를 바라보니 강한 햇살이 내리쬐어서 눈이 아롱아롱 거렸다. 하지만, 행복하기 이를데 없다. 비록 인적 없는 곳이지만…
이렇게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곳을 찾은 고요는 마치 새벽에 인적 없는 때와 깊은 밤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에 버금갈 수 있다.
사랑의 연수원 앞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갑을 주워 달라고 했다. 그 소리를 처음에는 듣지 못하고,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사람없는 곳에서 올라오다가 그를 만나다니, 처음에는 나는 대단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머뭇거렸다. 말도 못하고, 거동도 편치않은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며 호소했겠는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어야겠다.
연수원 옆의 잔디위에 설치해놓은 조각품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다. 그것들이 상징하는 것들을 잘 설명해 놓았다. 십자가라든지, 방주라든지, 빵이라든지, 물고기등 각 모형을 테마로 잘 꾸며놓아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만들어 놓은 조각에 어린이가 즐겁게 뛰논다. 마냥 신이 나서 세상 모르게 활개친다. 그를 보니 어린시절 성당 아래에 있는 언덕에서 미끄럼 타던 때가 생각이 난다.
연수원안에서도 어린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니, 기도와 교육하는 장소뿐이 아닌 꽃동네는 사랑이 배어있는 곳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 소풍갔던 포근함을 받는 느낌이다. 또 국민생활공간 같기도 하다. 기회가 되면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생활 체험을 하고 돌아갔으면 어떨까 싶다. 그러면 활력 넘치는 생활로 이어지지 않을까. 꽃동네가 꿈꾸는 세상은 한 사람도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우러름을 받는 세상,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는 세상이다.
꽃동네는 가난과 고통으로 소외된 이들과 보잘 것 없는 이들의 보금자리로서 그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한 사랑을 체험하는 사랑의 구도자다.
꽃동네는 사랑의 결핍으로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사랑으로 맞아들여 돌봄으로써 그들 또한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삶을 함께 살아가도록 돕는 사랑의 중개자다.
모처럼, 꽃동네에 가서 많은 사람과 함께 기쁨속에 사랑을 배우고 돌아오는 것 같았고, 자연의 경치를 감상할 수가 있어서 행복했다.
2013.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