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의 자질
/ 김태길
작품에 반영되어 수필을 빛나게 하는 탁월한 인품이란 반드시 도덕적으로 높은 경지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예리한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 해박한 지식과 심오한 사상, 뛰어난 예술 감각, 뚜렷한 개성 등 모든 방면에 있어서의 탁월성은 어느 것이나 좋은 수필을 쓰는 데 보배로운 자산이 될 것이다.
특히 뛰어난 해학은 값진 수필을 위해서 크게 도움이 되는 성격 특질이다. 수필가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작가의 인품과 문장의 구성이라고 하겠다. 표현되는 대상으로서의 나와 표현하는 문필가로서의 나는 수필을 구성하는 두 가지 기본 요소이다. 따라서 수필의 우열은 표현되는 대상으로서의 나의 우열과 표현하는 문필가로서의 우열의 결합에 의하여 결정된다. 만약 표현되는 대상으로서의 나의 사람됨이 탁월하고, 또 표현하는 문필가로서의 나의 문장력도 탁월하다면, 그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수필은 더없이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 인품과 함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작가의 문장력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문장력'이라는 말은 구상까지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고 이해를 해야 한다. 자신의 체험과 사색을 글로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의 능력을 통틀어서 편의상 문장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떠한 인품이 탁월한 인품이냐에 대해서 견해의 대립이 있을 수 있듯이, 어떠한 문장이 좋은 문장이냐에 대해서도 견해의 대립이 있을 수 있다. 인품에 있어서나 문장에 있어서나, 탁월성의 기준을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은 인간성과 문화적 전통일 것이다.
이와 아울러 수필가는 꾸밈없는 솔직성과 함께 평면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수필가가 자신의 인품이 탁월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동기를 따라서 글을 쓸 때, 그 작품은 결정적으로 실패한다. 성현 군자연한 글뿐 아니라 자신의 박식이나 견문을 과시한 글은 독자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 의도함이 없이 은연 중에 작가의 인품이 작품에서 풍길 때 독자는 기쁜 공감에 젖는다. 자신의 결함 또는 실패담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다룸으로써 좋은 작품을 얻을 경우가 있다. 솔직함은 그 자체가 미덕일 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결합하면 해학을 낳기 때문이다.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글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뜻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는 문장은 원칙적으로 좋은 문장이 아니다. 다만 높은 경지에 이른 작가는 더러는 탁월한 독자에게만 이해될 수 있는 글을 쓸 특권을 갖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이 바로 독자들의 마음을 읽고 그에 맞는 문장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즉 독자의 미적 심금에 와 닿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떤 독자층의 미감을 매혹하느냐가 문제다. 초보적 독자들의 미감과 잘 어울리는 문장을 세상에서는 흔히 미문이라고 부른다. 의도적으로 멋있는 글을 쓰고자 꾀하면 도리어 저속한 글이 된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글이 좋은 글이다.
함축성과 간결성 또한 수필가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수필은 결코 긴 글이 아니기 때문에 함축적인 언어 구사 능력과 함께 간결하게 문장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나름대로 길러야 한다. 즉 독자에게도 느끼고 생각할 여지를 남겨 놓는 글이 좋은 글이다. 모든 말을 다 해버리면 독자는 지루함에 빠진다. 함축은 수필의 생명이며 함축을 위해서는 문장이 간결해야 한다.
군소리는 글을 죽인다.
문장이 보편 타당성을 가져야 된다는 것은 문학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기본이 될 것이다.
되도록 여러 사람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글이 좋은 글이다.
자기 혼자의 정취나 감흥에 젖어 제멋에 도취한 글은 소수의 독자들에게만 매력이 있을 뿐 일반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수필은 여운이 백미인 문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럴 만큼 수필에서의 여운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수필에서의 여운은 짧은 것 보다는 길면 길수록 좋은 것이다. 수필을 읽고 나서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면서 오랫동안 가슴울림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해보자. 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운이 길게 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수한 수필가가 될 것이다.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리는 글은 결코 좋은 글이 아니다.
또한 수필에는 나름대로의 품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장 정제되고 정갈한 문학인 만큼 품위가 있지 않고서는 독자들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수필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면 반드시 생각해두어야 할 문제이다. 더구나 문장은 수필의 품위를 좌우함에 있어서 결정적 구실을 한다. 야비하거나 표독한 표현은 글의 품위를 깎는다. 재주를 앞세워도 품위는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수필이 가져야 할 것이 바로 교훈적이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과 직선적인 표현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라 하겠다. 수필에서 삶의 교훈을 얻는 것은 어느 것보다도 보배로운 일이며 인생의 아름다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없는 수필은 그저 낙서에 불과하다고까지 폄하를 시킬 수 있다. 작가가 목소리를 높여서 설교를 꾀해도 좋은 수필이 되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라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반대로 이러한 설교조의 수필이 성공을 하는 경우는 아주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 비판 정신은 글을 돋보이게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비판은 공정해야 하며 자기 자신의 분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교훈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비판도 직선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인 것이 수필에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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