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학
제5장 교부들의 황금기
313년 6월 13일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 내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포고령, 즉 ‘밀라노 칙령’을 공포하였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교는 제국 내에서 다른 종교와 완전히 평등한 권리를 인정받았다. 밀라노 칙령은 교회가 견고하게 조직을 정비할 수 있도록 하였고, 더 나아가 역사는 콘스탄티누스를 그리스도인 황제가 되게 하였다.
‘콘스탄티누스 전환’이라 일컫는 이 사건은 교회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결정 사항들을 법령으로 제정하여 교회에 많은 혜택을 부여하면서 제국의 그리스도교화에 일조하였다.
첫 번째, 무엇보다도 주교들에게 ‘공공 도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를 통해 주교들은 공의회나 교회회의에 보다 수월하게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성경을 새로 필사하여 보급하고 아울러 교회 건축들이 그리스도교에 대한 황제의 공적 신앙 고백으로 강조되었다.
세 번째, 황제는 그전까지 이교도 사제들에게만 허락되었던 군대 복무 면제를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에게도 허락하였다. 또한 이교 재관들이 누리던 개인 세금 면제 혜택을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에게도 부여해 주었다.
네 번째, 주교들이 일반 법정의 재판관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다섯번째, 315년에 십자가형을 폐지하였고, 316년에는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죄수들의 얼굴에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였다.
여섯번째, 321년에는 교회가 상속권을 갖는 법을 제정하여 신자들이 그들의 재산을교회에 기증할 수 있게 되었다.
일곱번째, 321년에 국법으로 주일과 교회 축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여덟번째, 319년 또는 321년에 황제는 신의(神意)나 미래를 해석하기 위한 희생제사와 그 밖의 몇 가지 부도덕한 의식을 금지하였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수단으로서의 검투사 싸움을 폐지하였다.
아홉 번째, 324년 이후에 콘스탄티누스는 ‘대제관’이라는 칭호를 포기하고 이를 교황에게 부여하면서, 자신은 ‘밖에 있는 이들의 주교’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1. 아리우스 논쟁과 니케아 공의회
1) 아리우스
아리우스 사상의 근본 전체는 모든 실재의 비출생적 근원인 하느님의 절대적 초월성과 단일성에 대한 옹호이다.
아리우스는 성부만이 모든 것의 근원이며, 시작도 없고, 태어나지 않고, 창조되지 않으며, 따라서 영원하고, 불변하며, 변화하지 않는 하느님이라고 본 것이다.
아리우스에 다르면, 성자가 성부의 외아드님이라는 사실은 비록 성자가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우위에 있지만 성부의 완전한 피조물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하느님의 완전한 피조물’인 성자는 성부의 본성에 참여하지 않고 종속이기 때문에 참된 하느님이 아니다. 성자는 창조된 존재이기에 능력과 지혜에 제한이 있으며, 도덕적으로도 죄를 범할 수 있기에 은총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2) 니케아 공의회
니케아 신경은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고백과 파문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무엇보다 성부가 전능하신 만물의 창조주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또한 성령에 대해서는 “그리고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라고 간단히 고백할 뿐이다. 이는 당시까지 성령론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신경의 신학적 가르침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당시까지 동의어로 쓰였던 ‘태어난’과 ‘창조된’이란 단어의 개념이 명백히 구별되었다. ‘태어난’은 성자가 성부의 본질에서 영원 전에 탄생되었음을 의미하며, ‘창조된’은 피조물성을 의미한다.
두 번째, 하지만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었다.“히포스타시스 또는 우시아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이라는 파문문의 표현에서 ‘우시아’라는 단어와 ‘히포스타시스’라는 두 개념을 같은 의미로 보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사벨리우스적 해석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위험은 “육신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셨으며”라는 표현에서 나타난다. 이는 후에 예수의 영혼을 부정하는 라오디체아의 아폴리나리우스 이단의 발생에 단초가 되었다.
세 번째, 공의회는 ‘동일본질’의 성격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고, 세 위격이 실재적으로 구별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 구별이 영원한 구분인지 역사적 구분인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지 않다.
2. 동방교회의 주요 교부
1)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신학사상
무엇보다 그의 신학 사상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가 아리우스주의자들을 거슬러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성을, 그리고 아폴리나리우스주의자들을 거슬러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는 본성을 뜻하는 우시아와 위격을 뜻하는 히포스타시스를 명백히 구분하기 때문이다.
3. 서방교회의 주요 교부
1) 히에로니무스의 신학사상
저술가로서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히에로니무스를 독창적인 사색가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의적 권위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데, 이러한 권위는 다음의 세 가지 주요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첫째, 그의 지식의 폭넓음과 확실함을 들 수 있다.
둘째, 전통에 대한 강한 의지를 꼽을 수 있는데, 여기서 이단에 대한 그의 강력한 힘을 볼 수 있다.
셋째, 가톨릭 신앙의 규칙에 대한 그의 가르침의 순수함을 들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성경의 참된 의미를 부여하고 전통을 대표하는 하는 것은 교회이다. 따라서 교회의 가르침을 듣기를 거부하는 이는 이단자이며 원수인 것이다. 교회의 이러한 교의적 역할을 그는 특별히 로마 교회에 부여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권위에도 불구하고 히에로니무스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교계제도에서 나타나는데, 그는 주교직이 사제직보다 상위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점에 기초한다. 첫째, 초기 공동체들은 사제단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것, 둘째, 사제단의 구성원들이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된 ‘에피스코포이’ 또는 ‘프레스비테로이’라고 불렸다는 점이다. 그에 의하면, 주교의 권위는 신적 기원을 가진 동시에 교회 공동체들이 내적 분열에 떨어질 위험을 막기 위한 교회적 기원도 갖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종말론이다. 그는 오리게네스의 노선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며, 죄인들이 받는 벌도 영원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지옥의 벌은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내적이고 영적인 벌이라고 보았다.
2) 암브로시우스의 신학사상
무엇보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그의 사상이 두드러지는데, 그는 이 관계를 크게 세 가지 원칙에서 고찰한다.
먼저 교회는 국가로부터 독립된 통치 영역에 있다. 암브로시우스는 국가와 종교를 분명하게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신앙의 문제에 있어 제국의 지배에서 자유로운 권한을 가지고 있다. 주교들은 오직 주교에게만 재판을 받으며, 신앙 문제에
있어서는 황제 역시 주교들에게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성당과 종교 건물등은 주교들의 권위 하에 있어야 한다.
둘째, 교회는 윤리 도덕의 수호자이다. 따라서 교회는 군주를 포함한 모든 이들을 종속시킬 권리와 의무가 있다.
셋째, 교회는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즉 국가는 교회에 대해 호의를 베풀어야 하며, 다른 예식들을 거부해야 한다.
교의 문제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아리우스주의에 반대하여 성자의 참된 신성과 성령의 신성을 가르쳤다. 특별히 삼위일체의 문제에서는 성부를 성자의 원천이자 뿌리로, 그리고 성자를 성령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
또한 암브로시우스는 모든 인간이 유산으로 죄의 상태를 물려 받는다고 주장하면서 유아세례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4. 수도 교부
1) 안토니우스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역사는 ‘은수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안토니우스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처음부터 수도생활은 ‘그리스도를 모방함’이자 ‘그리스도를 따름’이라고 가르친다. 이 때문에 수도승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완전한 이탈, 온갖 근심과 걱정에서의 자유, 곧 하느님께 대한 확신 그리고 자신의 생계와 자선을 통해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한 노동을 들고 있다.
2) 요한 카시아누스
카시아누스에 따르면 수행생활 없이 관상생활은 불가능하다.
수도생활의 목적은 ‘마음의 순결’로, 포기를 통해 ‘하느님 나라’라는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포기의 첫 번째 단계는 고독 속에 살기 위하여 외적으로 자신을 포기하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예전의 습관과 욕정, 그리고 악습을 끊어 버림으로써 내적으로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포기는 현세의 모든 기억을 몰아내고 우리 시선을 영원한 안식처로 향하게 한다. 이 단계에서 수도자는 ‘마음의 순결’에 도달하여, 자신에 대해서 의식하지도 못하고 또 자기가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된다. 더 이상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단지 끊임없이 성부를 향할 뿐인 것이다.
3) 베네딕투스
베네딕투스 규칙서는 서방 수도회의 모체가 되었다. 이 규칙서는 다음의 특징을 드러낸다.
우선 베네딕투스의 수도생활은 하느님을 찾는 삶을 자신의 목적과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공동체 삶이다. 베네딕토회는 다른 공동체와는 달리 공동생활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의 삶을 공동생활을 통하여 증거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특징은 하느님의 일과 노동의 조화이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짧은 문장은, 비록 규칙서에 나온 것은 아니지만 베네딕토회의 삶을 특징짓는다.
기도와 노동의 조화에 대한 가르침은 하느님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일치, 관상과 활동의 일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 6장 교부들의 쇠퇴기
1. 레오 대교황
교황은『플라비아누스에게 보낸 교의적 서한』에서 사도신경을 기반으로 자신의 그리스도론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요 아버지이시고, 아들 또한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그분과 다를 것이 없으며, 그분과 함께 영원으로부터 존재하는 분이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동정녀로부터 그리스도가 태어났기 때문에, 죄와 죽음도 그의 인성을 압도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인성과 신성은 각각의 속성들을 지니 채로, 곧 혼합이나 혼동 없이 한 위격 안에 공존하여 있다. 교황은 구세주는 진정한 인간이어야 하고 인간의 대표자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써 인간의 죄를 없애고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켰던 것이다.
무엇보다 레오 교황은 ‘교회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에 대해 강조한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라는 주체가 그의 신학 사상의 중심에 있다. 몸으로서 자신의 머리인 그리스도에 긴밀하게 일치하여 있는 교회는 무엇보다 성인들의 친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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