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수필 문학 입문 - 윤오영 (저자)

사랑의 기쁨 2013. 11. 20. 16:46

수필 문학 입문

 

윤오영 (저자)

 

“창작은 모방에서 출발한다.” “문학은 표현이다.”

표현기술의 연마없이 개성적인 문체는 탄생되지 않는다. 독서와 문장 수련은 절대적 조건이다. 수필은 생활이다. 성실한 생활이 없으면 수필은 없다.

 

독서

책이 너무 많아 일생을 읽어도 부족하다고 걱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을 꼭 한번 거쳐야 될 필요가 있는 서적이란 50, 60권이면 족하다.

그 중에서도 다시 추리면 열 손가락을 넘지 아니할 것이다.

대학자. 대지식인의 문장에서는 의외로 좋은 수필을 찾아보기 어렵다.

독서의 선택은 두 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만인이 공인하는 고전명작이다. 이것은 소설이든, 시든, 희곡이든, 문장이든 일독을 요한다.

다음은 시문時文이다. 이 시문의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을 믿고 귀를 믿지 말 것이다.

아무리 대가의 글이요 세상이 떠드는 글이라도 제눈에 안 들면 버린다.

아무리 무명인의 글이요, 남이 나쁘다 해도 제 눈에 들면 택한다는 주관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주관적 선택이 가능할 것인가. 글을 읽고 나서 이글이 나에게 어떤 감격을 주었나. 어떤 정서를 안아다 주었나. 어떤 새로운 문제를 제기해 주었나.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겼나 생각해 봐서 하나도 뚜렷한 것이 없으면 그글은 읽지 말라. 그것은 저속한 글이거나 무의미한 잡문이다. 그런 글을 많이 읽으면 만화가게 드나드는 초등학교 학생이 공부 못하는 것과 같이 글을 못 쓰게 된다.

자기가 좋다고 생각한 글이거든 몇 번이고 싫도록 읽는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지 않고는 좋은 글을 못 쓴다. 왜냐하면 독서의 첫 단계는 그 글을 따라 가려는 노력이요, 둘째 단계는 그 글을 정복하려는 노력이요, 셋째 단계는 그 글을 버리고 앞서 가려는 노력인 까닭이다. 그런데 근래 이런 독서법을 모르고, 욕심만 부려서, 여러 가지 글, 새로운 글을 빨리 많이만 읽으려고 든다.

 

습작과 수련

글을 읽지 않고 글을 쓰려는 것은 밑천 없이 장사하려는 격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읽어도 써 보지 아니하면 이른바 안고수비眼高手卑격이어서 좋은 글을 못 쓴다. 글을 쓰려면 우선 많은 습작과 수련이 필요하다.

서투른 글을 빨리 발표할 것이 아니다. 자기의 글이 처음 활자화됐을 때의 기쁨이란 크다. 그러나 두고두고 후회될 때가 많다. 반드시 직업문인이 될 필요도 없고, 문단인과의 교유, 문학단체에 참가함으로써 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분투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고독의 길만이 스스로 자기를 키워 나가는 길이다. 글을 썼으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퇴고를 거듭할 것이다.

한 자 한 자 쪼고 쪼아서 정밀하게 다듬어 나간다는 것은 가장 귀중한 일이다.

 

소재의 선택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우주의 진리에서부터 곤충의 생태에 이르기까지 인생문제, 사회문제, 생활과 학문이나 다 소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적 대가의 말이요, 보통으로 소재의 선택이 그 글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 소재는 이론적인 것, 학문적인 것, 관념적인 것을 피하고 생활의 실감에서 찾아야 한다.

강단수필, 교양수필, 문화수필, 계몽수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수필은 인생의 낙수란 말이 있다. 평범한 생활 속에 묻혀 있으면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면 참신한 수필이 될 수 있다.

 

서두의 득실

시작이 중요하다. 첫 머리 한 마디가 전편을 밀고 나가기 때문이다. 자기가 그 글을 써 보려고 느낀 동기가 있을 것이다. 그 정서에서부터 출발하면 가장 좋다.

예를 들면, 어제 북한산성으로 소풍을 나가서 본 단풍의 아름다운 것이 생각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쓴다고 하자. 그러면 “단풍이 눈앞에 벌겋게 비친다”는 데서부터 시작하면 그 출발이 청신하고 어제 하루의 단풍놀이가 즐거운 회상으로 나타나 전편의 정서가 살지만, 어제 아침에 출발하던데서부터 시작해서 도중의 풍경을 그려가면서 단풍의 아름다움으로 들어가면, 비정서적인 기록이 되고 말 것이다. 글을 쓰게 된 느낌이 현재에서부터 붓을 든다. 이것이 가장 쉬운듯하면서 실제로는 어렵다.

글은 솔직한 정서의 표현을 요구한다.

서두에 설명이나 서론을 늘어놓지 말 일이다. 문학이란 정서가 가장 소중한데, 설명이나 서론은 비정서적이기 때문이다.

안개같이 시작해서 안개같이 사라지는 글은 가장 높은 글이요, 기발한 서두로 시작해서 거침없이 나가는 글은 재치있는 글이요, 간명하게 쓰되 정서의 함축이 있으면 좋은글이다. 그 어느 것을 취하든 느낀 동기에서 선명하게 붓을 들면 큰 실수는 없다.

 

문장과 표현

문장은 간결해야 한다. 글은 짧고 뜻은 길어야 함축이 있고 여운이 있다.

함축이 있어야 읽을거리가 있고, 여운이 있어야 읽을 맛이 있다.

문장은 평이해야 한다. 글은 정밀해야 한다. 그리고 솔직해야 한다.

글에 수식이나 과장이나 변명이 필요없다. 심장에서 우러나는 말, 실감에서 일어나는 말, 직감적인 표현, 이것이 가장 귀하다. 이것이 참된 글이다.

간결한 속에도 문장의 기복이 있어야 그 변화에서 오는 힘이 있고, 농담이 있어야 무의미하지 않고 아름다우며, 기경과 해학이 약간 곁들여 문장의 조화 속에 윤기가 흐르면 진실로 성공한 글이다.

현대 수필 문장의 발달 소고작가란 글을 쓰는 사람이요 논하는 사람은 아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설은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 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은 독백이다. 수필이라고 해서 반드시 수필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시에서 소설에서 희곡에서 문장에서 배우는 것이다.

글을 잘못 쓰더라도 최소한 두 가지만은 지켜야 한다.

첫째, 무엇인가 자기가 생각해 낸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는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명문은 못쓰더라도 일반 문장에서 과히 벗어나지는 말아야 한다.

 

수필의 개념

수필이란 자유로운 산문이다. 수필에는 개성이 없어도 좋지만, 에세이에는 작자의 개성이 뚜렷이 나타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의 연마

누구나 수필은 쓸 수 있다. 그러나 생활이 곧 글이 못 되는 까닭에 수필이 모두 문학이 못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시인. 소설가는 많아도 수필가는 드물다. 그러나 수필가가 된 뒤에 비로소 수필이 써지는 것이 아니고 수필을 연마하고 연마해서 수필가를 형성해 나가며, 각고의 공을 쌓고 쌓아서 수필이 써지는 것이다.

 

수필문학의 이론과 실제

좋은 글을 쓰자면 우선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다음은 남의 글을 볼 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글을 쓰려면 먼저 구상이 앞서야 한다.

독서란 하나의 체험이다. 독서의 체험은 항상 우리의 실제적인 체험과 아울러 우리의 글 속에 나타나게 마련이다.

 

2013.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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