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시대 이후의 영성(19-20세기)
1.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까지 가톨릭교회의 상황과 영성
1.1. 역사적, 사상적 상황
당시의 사상과 문화에 있어서는, 철학 체계로서 자유주의가 삶의 모든 표현들 속에 스며들었으며, 상대주의, 긍정주의, 합리주의, 실존주의, 현상론 등이 주요 요소들이었다. 19세기 중반 이후의 대립구도를 이룬 경제, 정치 체계들로서 자유주의-자본주의,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 등이 있었다. 예술과 문화의 표현은 낭만주의, 신고전주의에서 상징주의 및 초현실주의 등이 주류였다. 또한 전화,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등 새로운 전달 및 표현 양태들을 동반한, 자연과학과 기술의 막대하고 급속한 발전; 문화와 사회전달의 국제적 현상으로서의 스포츠등이 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세속화의 도도한 흐름이 중요요소이다.
1.2. 가톨릭교회의 ‘재건(再建)영성’ (19세기 중반까지)
가톨릭교회에 특히 큰 위기를 초래한 계몽주의라는 무시할 수 없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거대한 정신운동을 배경으로, 소위 “구체제”라고 불린 전통적 체계들이 근본적으로 뒤바뀐 시대가 있었다. 비인회의(1815)에서 시작한 “재건”의 노력은 19세기 전반부까지 지속되었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다만 종교적 영역에서의 재건은 독일의 “질풍노도”, 낭만주의, 경건주의 등과 같은 “부흥”운동 인 몇몇의 예술, 문화 운동들에 힘입어, 새로운 사회여건에 힘입어 단순한 “회귀”니 “회복”이 아니라 부흥을 이루게 되었다.
전개된 일련의 혁명들의 첫 시기에는(1789-1848) 폭력적인 형태를 띠면서, 혁명의 충격은 정치-종교적 봉건제도의 종말을 가져왔고, 국가의 세속화와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교회 재산의 찬탈을 가져왔다. 이 상황은 지역교회들을 국가로부터 점진적으로 해방되는 계기가 되었다. 교회와 국가는 필연적으로 분리되었고 고유한 활동 영역 안에서 상호 독립적이 되었다. 이 과정은 물론 국가마다 그 양상을 달리 했으나, 특히 긴 가톨릭 전통을 지닌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는 적대적이며 폭력적인 분리가 일어났다. 이러한 투쟁과 박해 상황에 적응하는 가운데 나중에 교회는 그전에 경험한 바 없는 그리스도교적 이상에 가까워졌다. 교회의 진정성과 독립의 확보에 훨씬 도움이 되었다.
교회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치적 권력, 특권, 부유함 등을 버리게 되었다. 또한 흘러 넘치는 세속적 요소들을 정화할 수 있었다. 사제성소는 그 숫자에 있어서는 저하되었으나 질적으로는 높아졌다, 다양한 형태의 사목은 엄밀하게 교회적이며 영적인 활동이 되었으니, 세속적 걱정은 덜고 새로 열리는 영역으로 넓어졌다, 성직자의 양성은 괄목할 만큼 나아졌고, “재건된”수도생활은 더욱 큰 진정성을 추구하였다, 교회의 일치와 통교에 대한 의식이 생겼다. 박해 속에서 교회내적 일치가 추구되었고, 많은 투쟁 끝에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은 사라질 수 있는 세속적 구조에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적대적 환경에서 영성은 “재건(1814-1850)이라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 가치들을 살리려는 각성과 부흥이 시기를 맞았고, 익은 열매는 나중에, 세기의 후반부(1860-1910)즈음에 시작된 성찰과 확산이라는 둘째시기에 거두게 된다. 그리고 발생하는 긴장들은 나중에 20세기에까지 계속된다.
1.3. 가톨릭교회의 위기와 긴장, ‘투쟁적-방어적 영성’(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점진적인 종교적-교회적 재건 뒤에, 세기 중반 즈음, 교회의 중앙집권화와 권력의 강화가 시작되어 20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두 가지 종교적 태도가 점점 더 분명히 나눠졌으니,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확신을 지닌 그리스도인들과 자연주의 추종자들, 보수적 그리스도인들과 자유주의적 그리스도인들, 우파적 그리스도인들과 좌파적 그리스도인들 등이다. 교회의 더 내적인 영역에서는 제1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훨씬 더 중앙집권화 된 새로운 교회 구조 혹은 통치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의 종교심의 각성에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가톨릭과 교회의 힘의 각성은 세 가지 주요 측면으로 표현되었다. 즉, 교회와 국가의 통합-분리를 위한 투쟁으로; 교회의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 신앙과 과학의 대립의 극복을 위한 투쟁이다.
사회의 근본적 세속화의 둘째 시기와 생명의 물질화는 세계제1차 대전(1914-1918)이후 결정되기 시작한다. 사상적으로 적대적인 두 흐름은 그리스도교사상의 전통적 가치들에 대해 반대하는데 있어 하나가 된다. 즉, 조직적이고 투쟁적인 무신론(마르크스적 공산주의)과 자연주의 혹은 자연주의적 인본주의가 그것이다. 교회의 중앙집권화는 로마 교황청의 재조직(1900-1904) 및 교회법 반포(1971)와 함께 그 정점에 이른다.
이 내적 과정에 때 맞춰, 극우, 극좌 운동(공산주의와 국가-사회주위)으로부터 그리스교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폭력적인 박해가 일어났다. 자유와 민주적 사상들의 결정적 승리는 종교적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쳤고, 전통적 양태의 영성이 눈에 띠게 감소되고 과거의 구조와 가치들에 관해 발생한 혼란이 따랐다.
“가톨릭 자유주의”와 아메리카니즘과 근대주의 등이 자유주의적 사상을 통해서 교회와 근대적 사고의 진적 사이의 전통적인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진보주의적 ” 시도로서 등장하였다.
사상적 관점에서 새로운 교회학문과 내재철학, 실존주의. 현상학 등의 철학조류와의 만남, 그리고 그 교회학문의 “자유주의적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새로운 문화에의 접근은 이 시기에 교회를 엄습하는 신앙적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아메리카니즘”과 “근대주의”는 19세기에서의 다음 세기로 넘어갈 때 정당한 신앙의 영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 두 가지교회내적 긴장들이다. 아메리카니즘은 영성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나, 근대주의의 영향은 간접적이면서도 더깊은 영향을 주었다.
2. 제2차 바티칸공의회
2.1 공의회 이후의 영성
2.1.1. 성령의 재발견
전통적 영성은 성령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는 성령에 따른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영성에는 중대한 문제였다. “영적인 사람”(1코린 2, 15)은 성령 안에서 성령의 다른 “열매들”의 뿌리인 사랑이라는 열매를 통해 풍요로워진 사람이다. 그는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 성령의 영감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를 입은 ” “새사람”(콜로 3, 9; 에페 4, 22-24; 로마 13,14; 갈라 3,27)이다. 이는 영성생활이 지닌 다름 아닌 성령론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성령의 성화작용을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령의 재발견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영적 활기를 불러 일으켰다. 영성의 재발견의 가장 기대되는 표지들 중에 하나는 신학교와 신학대학의 교육과정 안에 의무과목으로, 최소한 공식적으로 포함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2.1.2. 세속과 세상의 차원
영성생활에 대한 마니케이즘적, 신플라톤적 전망과는 대조적으로, 그리고 원천들의 재발견과 나란히, 세상과 인간,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발견한, 생활 속으로의 “잠입”의 영성이 발전하였다. 육체, 한시적인 것, 세속적인 것, 아름다움, 즐거움, 행동, 일, 사회참여 등이 새롭게 가치평가 되었다.
2.1.3. 인간중심주의적 전환: 가난한 사람들
공의회는 복음화하고 해방시킬 대상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에 우선적 위치를 부여했다.
1)공의회에서의 가난한 사람들
요한 23세가 라디오메시지(1962.9.11)에서 “교회는 개발도상국 백성들 앞에서 무엇이며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말하고자 합니다. 교회는 모든 이들의 교회,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입니다”라고 언급함으로써 발단이 되었다.
이것은 영적 혁명의 원리였다. 교회는 “가난한 ”교회로 정의되었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다. 복음화는 해방하는 것이며, 불의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되었다. 때문에 “영성가들”은, 그들의 개인적 실존을 가난 속에서 영위하면서,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순교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생명을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2)공의회 이후의 가난한 사람들
인간중심주의는 나날이 점점 더 확대되었고, 영성도 이 근본적 경향성 속으로 들어갔다.
메데인과 푸에블라에서 윤곽이 잡힌 신학의 중요한 교의적 핵심을 형성하였고, 해방신학을 향해 점점 급하게 불어나는 격류가 되었다.
신학과 영성은 가난한 이를 “신학의 장(場)”, 하느님 나라와 예수 자신이 역사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루는 일종의 육화와 신현(神現)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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