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교수 |
신은 인간의 귀한 생명을 그냥 버려 두지 않고 영원한 당신의 나라로 불러들인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죽음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
최사장 |
그건 또 이상한 말이네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말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신은 인간의 죽음을 해결하신다는 뜻입니다. |
최사장 |
인간 부활 신앙을 말하는 것인가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죽음을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모두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고린토 전서 15장 21절-22절)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듯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에페소 2장 5절) 인간은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고등동물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소는 죽어서 불고기 감을 주는데 인간의 귀한 생명이 죽어서 그렇게 죽음을 통해서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겠습니까? |
최사장 |
사실 인간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
박교수 |
그런 욕망과 본성이 있다는 것은 그런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만드신 그분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부활 신앙'이라고 합니다. |
최사장 |
글쎄요. 그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
박교수 |
자! 부활 신앙을 이렇게 분석해 봅시다. 최사장님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없다고 믿지요? |
최사장 |
그렇습니다. |
박교수 |
그런데 저는 그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죽어봐야 알 수 있는데 전혀 모르는 상황이니까 최사장님은 그것이 없다고 부정적으로 믿고 저는 그것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믿습니다. 최사장님이 믿는 그 믿음의 가능성은 몇 퍼센트나 되겠습니까? |
최사장 |
글쎄요. 교수님 말씀을 듣고 보니 반반 되네요. 약 50 퍼센트! |
박교수 |
맞아요. 죽은 다음 부활이 없다고 믿는 것도 50퍼센트이고, 있다고 믿는 것도 50퍼센트입니다. 그렇지요? |
최사장 |
그렇습니다. |
박교수 |
그런데 그 내용을 두고 최사장님은 부활과 천국이 없다고 믿고 저는 있다고 믿습니다. 그 가능성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최사장님의 부정적인 믿음은 너무나 허무합니다. 인생은 절망적입니다. 그런데 저의 긍정적인 믿음은 영원한 희망을 줍니다. 50퍼센트의 가능성은 믿을 만하지 않습니까? |
최사장 |
? |
박교수 |
똑 같은 믿음인데 하나는 절망적이고 하나는 희망적인 것입니다. 한번 믿어 보세요. 손해 볼 것 없습니다. 이러한 신앙분석은 바로 파스칼의 이론입니다. 막연히 "내 생각에는 없을 것 같아"하는 최사장님의 태도는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성서의 가르침이 있고 성인들의 가르침이 있고 거기에 따르는 기적들도 있고 학문적인 근거도 있습니다. |
최사장 |
'부활 신앙'에 대한 학문적인 근거는 무엇입니까? |
박교수 |
신학적인 결론이지요. 신학은 성경에 근거를 둔 학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자연과학과는 전혀 다른 분야이지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이성적으로 한번 분석해 봅시다. 최사장님!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합니까? |
최사장 |
정비 공장으로 가서 수리하지요. |
박교수 |
같은 이론으로 인간이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최사장 |
인간 고장이 뭡니까? |
박교수 |
사람이 죽었습니다. 말도 못하고 인간 행위가 끊어졌습니다. 그 인간 고장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처리합니까? |
최사장 |
공동묘지로 가지 않습니까? |
박교수 |
그렇습니다. 그런데 고장난 자동차는 정비공장에 가면 새 차가 됩니다. 죽은 인간 생명도 '생명 정비 공장'으로 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최사장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박교수 |
이론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고장난 자동차는 자동차 메이커의 손에 가면 쉽게 수리됩니다. 인간의 생명도 죽어서 고장이 났을 때 생명의 메이커이신 신의 손에 가면 거뜬히 수리될 수 있습니다. 없었던 자동차를 만드는 메이커가 고장난 자동차를 쉽게 수리할 수 있듯이, 없었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생명의 메이커는 죽은 인간을 간단히 살릴 수 있습니다. 요즈음 말대로 한다면 에프터 서비스가 된다는 말입니다. |
최사장 |
? 그러면 신은 생명의 메이커라는 뜻이군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인간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오징어 한 마리도 못 만든다고 했지요. 장미꽃 한 송이, 파리 모기 한 마리도 못 만듭니다. 요즈음 무슨 동물 복제니 생명 유전 과학이니 하는 것은, 있었던 생명으로 장난하는 것이지요. |
최사장 |
그건 그런 것 같습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은 있어도 오징어를 만드는 공장은 없으니까요. |
박교수 |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특히 그리스도교는 생명을 창조하신 신과의 생명의 관계입니다. 죽음과 삶을 거는 중요한 인생 최대의 관심사가 되는 것입니다. |
최사장 |
그런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부활한 사실이 있습니까? |
박교수 |
좋은 질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죽어서 묘지로 갑니다. 육체는 부패합니다. 그런데 생명의 메이커이신 신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하고 물으셨다. 마르타는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요한복음 11장 25절-27절) 이렇게 자신이 바로 생명을 주관함을 선언하셨는데, 이것은 과학도 학문도 아닙니다. 이는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너 이것을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삶의 영원한 희망이 주어지고 이것을 믿지 않으면 인생은 허무하고 절망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
최사장 |
그럼 죽은 사람은 언제 부활합니까? |
박교수 |
성경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내 말에 놀라지 말라. 죽은 이들이 모두 그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나올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5장 28절-29절) 그러니까 창조주의 모든 사업이 끝나는 날, 다시 말해서 우주의 종말이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
최사장 |
"부활 신앙을 믿으면 삶에는 영원한 희망이 있고 그것을 믿지 않으면 절망적인 인생이다." 옳은 말씀입니다. |
박교수 |
또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의 중요성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 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요한복음 3장 16절-19절)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둠을 택한 인생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최사장 |
사실 그렇겠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사는 일이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
박교수 |
그렇지요. 신은 인간을 창조해서 그렇게 무자비하게 버려 두지 않습니다. 씨앗을 뿌렸으면 그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씨앗은 좋은 땅에 떨어져야 백 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돌 위에나 가시덤불에 떨어지면 말라 죽고 맙니다. 우리가 신으로부터 받은 귀한 생명을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
최사장 |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꾸어야 합니까? |
박교수 |
농부가 땅에 씨앗을 뿌려 놓고는 계속 물을 주고 김을 매듯이 우리도 생명을 신의 뜻대로 잘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윤리 도덕적인 생활을 말합니다. 비도덕적인 인간은 버림을 받고 도덕적인 인간은 결실을 맺는 영원한 행복을 얻게 됩니다. |
최사장 |
그런데 인간 사회의 윤리 도덕 문제는 너무한 것 같아요. 왜 비행기 납치범이 생기고 무기를 만들어 사람을 죽이고 죽고 하는지, 인간의 부조리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전능하신 신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복지사회를 만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박교수 |
좋은 질문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
최사장 |
그것이 무엇입니까? |